섬유근육통의 시작
20여 년간 영업조직의 관리직이던 나는 젊음을 일과 맞바꾼 케이스다. 아픈줄 모르고 몸이 부셔져라 일하다보니 남은 것은 너무 일찍 병들어 버린 몸이였다. 어느덧 40대 중반이 돼버린 지금의 나는 20년 전의 쌩쌩했던 내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의 몸이 되었다. 반짝이고 총기 있던 눈은 어느새 노안이 찾아와 침침함이 반복되다가 핸드폰을 가까이 볼 때마다 걸치고 있던 안경을 들어 올리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초점을 맞추는 여느 노안의 대처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만의 루틴이 있었기에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서 오전 관리자 회의을 마치고 사원들과의 전체 조회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나는, 어느샌가 아침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그 두려움은 몸의 이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달콤한 유혹의 시작점이다. 포근한 이불속을 박차고 더 자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나오는 거부터가 대단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진짜 하루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언제가부터 아침이 가장 큰 괴로움의 시작이 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늦잠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온몸이 쑤시고 두드려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가 아파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것만 같아서였다. 마치, 어제 있지도 않은 운동회를 신나게 마치고 온 다음날의 몸 상태 같았다. 소위말해서 안 아픈 곳이 없을 지경이였다. 처음엔 일이 힘들어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고. 기온이 떨어지면 날이 추워져서 으스스해서 감기가 오려나 했고 잠을 설친 날은 몸이 고된가 보다 했다. 그래서 그저, 몸이 무거워지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번아웃'이 온 건가 나름 내 정신력을 의심해보기도 했다.
그저, 난 몸살이 자주 생기는 체질인가 보다 생각하고 물에 타먹는 종합감기약을 차처럼 마셔댔다. 이렇듯 감기약을 먹고 푹 자보기도 하고, 주말엔 아무것도 안 하고 무조건 잘 먹고 잘 쉬어보기도 했으며 한의원에 들러 침도 맞아보고, 유독 많이 아픈 부위에는 통증클리닉을 찾아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다 그때뿐이었다. 희한하게도 통증은 한 부위가 아니라 여러 부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아플 때가 많았고 그래서 찾게 되는 진료과도 점점 늘어갔다.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것이, 바로 '섬유근육통'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꾀병처럼 취급되는 병이란 현실에 이내 씁쓸해졌다. 왜냐하면, 늘 아프니까 주변에 더 이상 아프다 말하기도 입 아프고 눈치가 보일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남들은 꾀병이라고 여기는 '섬유근육통'이란?
'섬유근육통'이란, 근육이나 관절뿐만 아니라 인대나 힘줄등 신체 거의 모든 연부조직에 만성적인 통증을 일으키는 증후군인데 전신에 걸쳐 피로감과 통증 뻣뻣함등이 나타나며 여기저기 누르는 곳마다 통증(압통점)이 나타난다.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는 없으나 통증에 대한 지각이상 때문이라고 흔히들 보는 것 같다. 즉, 중추신경계의 작동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를테면 정상인들은 통증으로 느끼지 않는 자극을 섬유근육통 환자들은 통증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는 이러한 자극을 몸에서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래서 나 또한 그랬지만 흔히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시작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듯 목어깨 통증이나 허리통증으로 시작해서 전신으로 퍼지는 양상이라 그저 오래 앉아있고 피곤해서 어깨나 허리가 아프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얼얼하기도 하고 몸이 뻣뻣하기도 하며 뭉친 부위등의 특정 부분을 누르면 자지러지게 놀라기도 한다. 전신통증과 수면부족에 따른 만성적인 두통도 따라다니며, 일반 근육통과의 다른 양상은 자도 자도 피곤하다는 것이다. 아파서 자주 깨기도 하고, 숙면을 못 취하니 통증이 더 악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질환을 앓는 환자의 약 30% 정도가 우울증, 불안, 건강염려증과 같은 정신과적인 질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섬유근육통의 진단방법
섬유근통 증후군은 유사한 질병으로 의심되는 류머티즘 검사나 갑상선 기능저하증 검사, 근골격계와 신경학적 검사에 이상이 없는지 감별을 통해 제외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신체 압통점과 환자의 문진을 통해 최종 진단을 내리는데 이 질병만을 진단하기 위한 특별한 검사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의심되는 질환들의 검사들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섬유근육통 진단설문지'를 통해 최종 문진후 드디어 '섬유근통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나는, 그토록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몇 년을 고생하다가 내 병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된 것이었다. 보통 이병으로 진단받기까지 나처럼 수많은 시간과 고통을 지나야 만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만큼 확인이 어려운 질병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눈에 보이는 외상이나 남들이 아는 큰 병이었다면 아프다고 일일이 호소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병은 남들은 몰라도 나 혼자는 많이 아픈 병이기에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할 때들이 있다. 나 역시, 아픔을 몰라주는 가족들 때문에 서러워서 펑펑 울어 본 적도 있었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암울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비록 완치는 어렵지만 까짓 거 죽을병도 아니고 통증을 조절해 가면서 얼마든지 병과 함께 살아갈 순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고, 무엇보다 긍정의 힘이야말로 이 질환을 이겨내는데 절대적인 힘을 가져다준다.
섬유근육통의 치료
그렇다면, 이제서야 병을 알았으니 하나씩 고쳐나가보자.
치료법은 크게 딱 3가지였다.
주사,약물,운동(물리치료 포함)
대부분의 질병이 수술을 요하지 않는 한 이 범위 내에서의 치료가 가장 대증적이긴 하다.
1. 주사
주사는 국소부위의 심각한 통증이 있는 경우 가령 목과 어깨허리처럼 해당 부위에 스테로이드성 주사등을 놓는 경우도 있지만 스테로이드 주사의 경우 효과는 있지만 많이 맞는 건 부작용의 우려가 있어 추천하진 않는다. 나의 경우는 리도카인(마취제) 성분이 통증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소량을 혈관주사로 전신에 놓아 과도하게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편안하게 해 준다 하여 5~6회 정도 맞았는데 은근 효과가 있었다. 아무래도 수액주사 형식으로 3~40분 누워서 맞고 나면 몽롱도 하고 가끔 숨도 차는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이내 전신 근육통이 조금은 완화되어서 몸이 상당히 편해짐을 느꼈다.
2. 약물
주사와 함께 처방된 약은 소염진통제와 신경통증약, 그리고 항우울제였다. 처음엔 진통제와 신경약은 당연히 통증 완화가 목적이니 처방이 당연하다 여겼지만, 항우울제는 뭔가 께름칙했다. 내가 아픈 게 정신적인 거란 건가? 원래 안 아픈 건데 혼자만 아프다고 착각을 해서 이런 정신과적 약을 처방하나 기분이 묘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구심을 내려놨다. 섬유근육통의 경우 추측되는 발생원인 중의 하나가 중추신경계와 척수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등이 감소되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게 바로 중추신경계의 통증조절에 이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쓰면 이러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호르몬 수치를 조절해 주기에 치료에 도움이 되며, 만성통증으로 인해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기에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고 실제 도움을 많이 받았다.
3. 운동(물리치료)
주로 물리치료는 뻣뻣해진 근육과 관절을 풀어주는 운동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일상생활에서도 꾸준히 스트레칭과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안 가는 물속에서 하는 운동을 추천해 주어 현재는 아쿠아로빅을 꾸준히 해보고 있다. 아직은 운동 강도가 내게는 높게 느껴지지만 그간의 통증으로 몸이 많이 굳은 탓인 듯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물속에서 걷고 뛰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근력에 도움이 되고, 또 신나는 음악과 함께 다 같이 하는 운동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샌가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 채 강사분의 동작을 곧 잘 따라 하고 있음을 느꼈다. 중력에 힘을 받지 않으니 물속에선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그렇다고 물속 운동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제대로 각 잡고 하려면 엄청난 근력이 필요한 동작들이 많다. 물살을 가르며 팔을 휘젓고 발차기를 하는 등 제법 많은 힘이 들어가는 운동이기 때문에 통증 없이 근력을 키우기엔 더없이 좋은 치료운동인 듯하다. 다만, 볼품없는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수영복을 입고 봐줄 것 없는 얼굴에 그나마 머리빨로 한평생 살아왔던 나에게 수모(물속 모자)를 쓰는 수모(受侮)를 겪게 하는 것이 개탄스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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